수명연장 덕 40~68살로 확장 ‘사회적 전문지식’의 절정기
반응·처리 속도 느려진 반면 직관·추론 능력은 유지·발달
‘중년=퇴행’ 고정관념 뒤집어
‘중년’이란 말은 인생의 중간쯤에 있는 연령대 층을 가리킨다. 근대 한국어 어휘 확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영어의 ‘미들 에이지’나 ‘미드라이프’의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인생이 길어졌다. 수명은 갈수록 는다. 그러면 중년의 나이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얼마 전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64살의 배우 해리슨 포드를 중년이라 썼다가 독자의 항의를 받았다. 항의 요지는 “그가 중년이면 128살까지 산다는 소리냐. 육십대가 중년이라면 지나친 셈법”이란 것. 그럴까, 과연?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인간의 평균수명은 30살. 100년 전까지도 미국·유럽의 선진국 평균수명은 약 47살에 그쳤다. 그 평균수명이 약 78살로 바뀐 지 오래다. (한국인 평균수명은 2007년 기준 79.5살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바버라 스트로치의 2010년 신작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뇌과학과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의 수명 연구를 아우르는 최신 성과들을 섭렵하면서, 갈수록 수명이 느는 21세기 초입에 접어든 지금, 대부분 학자들은 중년의 나이를 40살부터 68살까지로 본다는 소식을 전한다. <뉴욕 타임스>의 의학·건강 기자인 지은이는 앞으로 중년 범주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순넷의 해리슨 포드는? 맞다. 중년.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중년의 나이에 대한 재규정을 넘어서, ‘다 자란 뇌’ ‘중년의 뇌’를 두고 흔히들 ‘퇴행하는 뇌’로 인식하는 20세기식 통념을 산뜻하게 뒤집어 보이는 책이다. 요컨대 우리 생애 최고의 뇌는 중년의 뇌라고 말한다.

무슨 모임에서 낯익은 사람을 보았으되 도무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이들에게, 금방 사온 달걀들을 냉동실에 집어넣고는 냉장실이 뚫어져라 뒤지며 달걀이 없어졌다고 이제 자신의 뇌가 다했다고 한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중년 뇌의 ‘일각’을 보지 말고 그 뇌의 ‘전체’를 보라고 조언한다.

최근 여성 심리학자 셰리 윌리스가 이끄는 ‘시애틀 종단연구’팀은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 연구는 1956년부터 40여년간 해온 수명 연구로 오랜 시간 똑같은 사람들을 통해 패턴을 찾는 종단 연구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시애틀의 20~90살 다양한 직업 남녀 6000명의 정신 기량을 체계적으로 추적해온 이 연구의 결과를 보면, 참가자들은 ‘인지능력 검사’에서 다른 어떤 나이대보다도 40~65살 중년에 최고의 수행력을 보여줬다.

이 검사는 가감승제를 빨리 하는지를 재는 ‘계산능력’, 녹색 화살표가 보일 때 얼마나 단추를 빨리 누르는지를 재는 ‘지각속도’, 얼마나 많은 단어를 이해하고 그 동의어를 얼마나 아는지를 묻는 ‘어휘’, 얼마나 많은 단어를 기억하는지를 보는 ‘언어기억’, 사물이 180도 돌아갔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식별능력을 재는 ‘공간정향’, 유사한 논리문제들을 얼마나 잘 푸는지를 보는 ‘귀납추리’ 등 6개 범주에 걸쳐 참가자들에게 7년마다 다시 측정했다.

그 결과 40~65살에 받은 성적이 자신들이 20대에 받은 성적보다 좋았다. 6개 범주 가운데 ‘계산능력’, ‘지각속도’의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어휘, 언어기억, 공간정향, 귀납추리 등 네 범주에서 최고 성적을 낸 이들은 평균 40~65살 사이였다. 연구를 이끈 윌리스는 “지능에 관한 순진한 이론들과 달리, 고차적인 인지능력 발달 면에서 청년기는 절정기가 아니며, 중년 사람들은 본인의 25살 때보다 더 뛰어난 수행력을 보여줬다” 고 보고했다. 성 차이도 있었다. 남성들이 50대 후반에 절정에 도달하는 반면, 여성들은 60대에 최고 수행력을 보여줬다.

지은이는 우리 뇌가 십대 내내 대혁신을 겪고 25살까지 향상되지만, 그 뒤 수백만 개의 뇌세포를 상실하고는 퇴행과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보는 견해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 견해는 최근 20년간 과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사실이 아니며, 최신 과학은 중년 뇌가 이십대 뇌보다 더 뛰어나다는 증거들을 보여준다. 뇌 스캐너를 이용해 늙어가는 인간들을 실시간 관찰한 연구자들은 뇌세포가 정상적인 노화과정에서 다량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뇌는 중년에도 계속 성장한다.

남캘리포니아대 젤린스키 교수는 현재 74살 사람들을 16년 전 74살 사람들과 비교하는 지능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 현재 집단이 16년 전 집단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다. 현재 74살 집단의 성적은 예전 검사에서 15살 아래 집단이 거둔 성적에 더 가까웠다. 젤린스키는 “미래에 대해, 특히 고용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의미를 함축하는 발견”이라고 말한다.

이름 기억하기, 계산능력에서 보듯, 중년 뇌의 처리속도가 느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판단력이라는 점에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중년의 뇌는 경험, 곧 전문지식이 깃든 뇌다. 인간 경험 연구에 이력을 바친 신경과학자 차네스는 한 게임(브리지) 실험에서 속도를 요구하면 젊은 선수들이 수행력이 높지만, 그 게임의 기본인 수준 높은 문제 풀기에선 나이 든 선수들이 이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심리학자 헤스는 ‘사회적 전문지식’이 중년에 절정에 달하며 나이 들면서 전엔 어려웠던 평가·판단이 쉬워지고 정확해지며 그런 이득을 주는 쪽으로 우리 뇌는 발달한다고 말한다. 수전 찰스의 연구는 부당한 폭력장면을 볼 때 젊은 사람은 분노로만 반응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분노하고 또 슬퍼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요컨대 인간은 세상에 대해 더 복잡미묘하게 반응함으로써 대응속도(처리속도)를 늦추고 충동적 행위를 억제한다. 이는 자신의 생존뿐 아니라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 좋을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생활인들이 흔히 직관, 지혜라고 부르는 것을 신경과학자들은 ‘요점’이라고 표현한다. 주요 주제를 이해·기억하는 능력이 요점 기억 능력이다. 뇌 작동 연구들은 뇌가 나이를 먹으면서 더 쉽게 주제, 큰 그림을 이해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신경과학자 레이나는 “말 그대로 기억은 청년기가 지나면 쇠퇴가 시작되지만 요점 기억은 노년에 이를 때까지 더 좋아진다”고 말한다. 아는 것이 많으면 추론할 수 있고 따라서 요점 기억을 사용해 핵심에 더 효과적으로 닿기 때문에 세부 기억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중년의 뇌에 대해 과학이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읽힌다. 고령화시대 고용해법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지는 한편으로, 자신들이 맞닥뜨린 어려움들을 쉽사리 ‘중년의 위기’쯤으로 치부하려는 중년들에게 과학의 이름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책이다. 신경학자들은 뇌세포에서 특히 ‘미엘린’이라 불리는 신경의 백색 지방질 피막이 중년 말기에도 계속 자라며, 이것이 증가하면 우리 인간이 주위를 이해하도록 돕는 연결망 구축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하버드대의 한 과학자는 이 미엘린의 성장 자체가 이른바 ‘중년의 전문지식(지혜)’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노련한 당신의 뇌를 과소평가 말라
감퇴한 능력에만 ‘과잉반응’
나이 들수록 감정통제 능숙

바버라 스트로치
바버라 스트로치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를 집필한 <뉴욕 타임스> 의학기자 바버라 스트로치(사진). 이 책을 쓰던 2010년 그의 나이 쉰여섯. 자타공인 “확실한 중년”의 여성이다. 애초 그가 중년 뇌에 관한 책을 쓰려던 이유는 사람 이름이 빨리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깜빡깜빡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가 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다양한 학자들을 취재하면서 중년 뇌가 이십대 뇌보다 더 똑똑하다는 연구 결과에 놀라 책의 목표를 전면 수정했다. 그러곤 주변 중년 친구들에게 연달아 물어봤다. “그거 알아? 우리 뇌가 이십대 때보다 더 낫다는 거?”

반응은 신속하고, 비슷했다. “웬 미친 소리!”

지은이는 그러나, 중년 뇌의 똑똑함이 실제론 “우리가 이미 알던 사실”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현실의 중년들은 매일 일을 하면서 젊은 시절과 견주고, 지금 뇌의 장점보다는 결점만 본다는 것이다. 그가 만난 중년 남녀들은 한결같이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면서도 말끝에는 “그래도 지금이 제일 유능한 것 같다”거나 “판단력은 지금이 최고”라고 답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중년 뇌의 똑똑함을 알리는 데서 나아가, 중년기가 청년기보다 더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를 들려준다. 우리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중년 위기’ 담론의 뿌리를 찾아내어 그 연구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중년 위기’론의 뿌리는 심리학자 엘리엇 자크가 발표한 1965년 소수 예술가들에 대한 연구다. 그는 예술가들이 삶의 중간 시점에 도달하면 표현양식을 바꾼다며, 중년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자각이 커지면서 깊은 상실감과 우울함을 야기하는 시기라고 규정했다. 뒤이어 심리학자 레빈슨은 고작 40명 남성을 연구한 뒤 쓴 1978년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이란 책에서 40~47살에서 중년 전환기를 찾고는 이 중년기는 위기의 시기라고 썼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표본을 대상 삼은 최근 연구는 중년의 그림을 뒤집는다.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은 중년 위기론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증거는 없다고 1990년대에 선언했다. 미국인 8천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실시한 카스텐슨의 연구 결과는 대상자의 5%만이 중년의 외상을 겪으며 그들은 대개 평생 정신적 외상을 겪어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도리어 연구 대상자 대부분은 중년 위기는커녕 35~65살 사이, 특히 40~60살 사이에 안녕의 느낌이 증가했다. 남자 2천명을 대상으로 2005년 종결된 22년간의 연구에서 심리학자 므로첵은 삶의 만족도는 65살에 절정이었음을 알아냈다. 카스텐슨은 중년에 더 행복한 이유를 뇌의 ‘긍정성 효과’에서 찾는다. 므로첵은 나이 들면서 더 행복해지는 이유를 우리 뇌가 감정을 더 잘 통제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다른 중년 위기론은 자식들을 떠나보낸 어머니들이 겪는다는 ‘빈둥지증후군’인데 이 역시 지금은 ‘허구’로 여겨진다. 심리학 교수 캐런 핑거먼은 매년 집을 떠난 신입생에게 부모님이 어찌 지낼지를 물었는데, 학생들은 패닉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들 답했다. 그러나 부모들은 삶을 즐기며, 아이들이 너무 자주 전화를 해댄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핑거만은 빈둥지증후군이 남성 대상 중년 위기론에 상응하는 여성 대응물로 만들어진 관념일 뿐이라고 말한다. 연구 결과를 보면 모든 시간을 자녀 양육에 바친 여성들조차 아이들이 독립하자 대체로 “대단한 만족감”을 느꼈다. 허미경 기자